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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이상행동 및 정신장애의 판별기준

by 발랄루피 2022. 7. 22.

이상심리학은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상행동은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개인의 부적응적인 심리적 특성을 의미하며, 정신장애는 특정한 이상행동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상행동에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 측면, 즉 인지, 정서, 동기, 행동, 생리의 측면에서 개인의 부적응을 초래하는 특성이 포함된다.


1. 적응적 기능의 저하 및 손상
이상행동과 정신장애의 정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적응이다. 인간의 삶은 개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적응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적응과정은 개인과 환경의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으로서, 개인이 환경의 요구에 맞추어 가는 순응과정과 개인의 요구에 맞도록 환경을 변화시켜 가는 동화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현대인은 21세기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향해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적응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행동은 개인의 적응을 저해하는 심리적 기능의 손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신체생리적 기능이 저하되거나 손상되어 원활한 적응에 지장을 초래할 때, 부적응적인 이상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주의집중력과 기억력의 저하, 과도한 불안과 우울, 무책임하거나 폭력적인 행동, 식욕과 성욕의 감퇴 등은 일상적인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직업적 생활에서 부적응을 초래하게 되므로 부적응적인 이상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이상행동은 직업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대인관계의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개인의 적응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행동을 적응적 기능의 손상으로 판단하려는 관점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적응과 부적응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부적응 상태를 초래하는 심리적 기능의 저하를 이상행동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점이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적응과 부적응을 누가 무엇에 근거하여 평가하느냐는 점이다. 개인의 적응 여부는 평가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평가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부적응이 어떤 심리적 기능의 손상에 의해 초래되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직업적 업무수행이 매우 부진한 사람의 경우에 이러한 업무 부진이 인지적 기능의 손상 때문인지, 동기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정서적 불안 때문인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심리적 기능한 적응적 결과 간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응적 기능의 저하와 손상은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신장애의 분류체계인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서는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들이 현저한 사회적, 직업적 부적응을 초래할 경우에 한하여 정신장애라고 판정하고 있다. 그리고 ‘현저한 부적응’에 대한 판단은 전문적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임상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2. 주관적 불편감과 개인적 고통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은 주관적 불편감과 개인적 고통이다. 개인으로 하여금 현저한 고통과 불편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이상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부적응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심하게 고통을 느/기는 심리적 상태나 특성은 이상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중에는 현저한 적응곤란뿐 아니라 주관적인 고통과 불편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불안, 우울, 비애, 분노, 절망과 같은 심한 심리적 고통과 불편감은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주관적 고통과 부적응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주관적 고통은 부적응 상태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고 주관적 고통으로 인해 부적응 상태가 유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관적 고통과 부적응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외현적으로는 성공적인 직업 활동이나 원만한 대인관계를 보이는 사람도 그러한 적응과정에서 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그러한 직업적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 심한 불안감을 지니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갈등이나 열등감으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감에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직업적 활동이나 대인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관적 고통의 기준으로 이상행동을 정의하는 데에는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심리적인 고통을 경험한다고 해서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하는 경우에 심리적 고통을 느끼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비해서 현저하게 심한 주관적 고통을 경험할 때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고통의 적절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둘째, 어느 정도 심한 주관적 고통과 불편감을 초래할 경우에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개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느끼는 주관적인 고통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사람마다 고통을 느끼고 참고 표현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기준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매우 부적응적인 행동을 나타내면서도 전혀 주관적인 고통과 불편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망상을 지니고 허황한 말과 행동을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에는 환자 자신은 주관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기준으로 볼 때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판단될 수 있다. 조증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의 경우에는 부적응적 행동을 나타내지만 자신은 주관적으로 매우 즐겁고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고통은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 불안, 공포, 분노, 절망 등 심한 주관적 고통을 느낀다.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이러한 심리적 고통과 불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임상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DSM-5에서도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들이 개인에게 현저한 주관적 고통을 초래할 때 정신장애로 판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이상심리학 권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