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 우리는 일시적으로 고통을 경험하지만 곧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어떤 사건들은 너무 강력하고 충격적이어서 우리의 마음에 극심한 고통과 혼란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고통스러운 심리적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서 입은 심리적 상처가 바로 외상, 즉 트라우마이다.
어떠한 경우든 외상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인해 심각한 부적응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다. 외상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스트레스 사건의 경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들을 외상 및 스트레스 사건 관련 장애라는 장애 범주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사건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하고 난 직후에 나타나는 부적응 증상들이 3일 이상 1개월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되는 경우를 뜻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증상의 지속 기간이 짧다는 점 이외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주요 증상과 진단기준이 매우 유사하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죽음의 위협, 심각한 상해나 성폭력과 같은 외상 사건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거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외상 사건을 겪은 직후에 다양한 증상들, 즉
(1) 침투증상(외상 사건의 반복적 기억, 고통스러운 꿈, 플래시백과 같은 해리 반응, 외상 사건과 관련된 단서에 대한 강렬한 반응)
(2) 부정적 기준(긍정적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함)
(3) 해리 증상(자신의 주변 세계나 자신에 대한 변형된 인식, 외상 사건의 중요한 측면에 대한 기억 불능)
(4) 회피 증상(외상과 관련된 기억이나 감정에 대한 회피, 외상과 관련된 단서들에 대한 회피)
(5) 각성 증상(수면 장해, 짜증이나 분노 폭발, 과잉 경계, 집중 곤란, 과장된 놀람 반응)
을 나타낸다. DSM-5에 따르면, 14개의 증상 중 어떤 것이든 9개 이상의 증상이 나타날 때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될 수 있다. 이러한 증상들이 지속 기간이 외상 사건에 노출된 후 3일부터 1개월 이내로서 단기간이라는 점이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핵심적 특징이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유병률은 외상 사건의 종류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강간이나 가족폭력 또는 총기사고의 목격과 같은 대인 관계적 외상 사건을 경험한 경우는 가장 높은 유병률을 나타내며 피해자의 20~50%가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13~21%, 폭력 피해자의 19%, 심한 화상 피해자의 10%, 산업재해 피해자의 6~12%가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하면 누구나 혼란스러운 부적응 증상을 일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적응 증상이 3일 이상 지속되면 일단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된다. 1개월이 지나도록 이러한 증상이 개선되지 않은 채로 지속되거나 악화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약 50%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마찬가지로 외상 사건이라는 분명한 촉발요인에 의해서 발생한다. 외상 사건에 노출된 후에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나타내기 쉬운 취약성 요인으로는 과거의 정신장애 경험, 신경증 또는 부정 정서성, 외상 사건을 심각하게 지각하는 정도, 회피적 대처 양식 등이 있다. 아울러 여성이 남성보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서 갑작스러운 자극에 강렬한 놀람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외상 사건 이후에 급성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날 위험성이 높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 변형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한 원인에 의해서 유발될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특히 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한 외상 사건에 대한 단기적인 신체적, 심리적 반응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상 경험의 부정적인 결과를 과장하는 파국적 평가와 그로 인한 무력감, 죄책감, 절망감이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 중 하나는 해리 증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해리는 기억이나 의식을 통합적 기능이 교란되거나 변질한 상태로서 현실의 부정을 통한 비현실감, 자신을 낯설게 여기는 이인증, 정서적 마비나 기억상실 등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해리 증상은 강력한 외상에 노출되었을 때 일시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외상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실재가 아니라 한바탕의 꿈이었기를 바라며 이러한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이처럼 현실을 부정하려는 해리 기능에 의해서 평소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중요한 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해리 증상은 외상의 스트레스에 대한 주요한 심리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사건에 대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해리 반응으로서 점차 현실을 수용함에 따라 해리가 해소되면서 증상도 완화되는 단기적인 장애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 증상이 더욱 악화하면서 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나타내는 모든 사람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상 사건에 대한 침투 증상과 각성 증상이 두드러진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전되는 경향이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는 노출과 인지적 재구성을 중심으로 한 인지행동치료가 증상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